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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태도

#15 일기는 마음의 성이다.

요즘 일기 쓰는 사람을 못 봤다. 다이어리를 예쁘게 작성하는 사람은 눈에 띈다. 하지만 다이어리는 일정관리를 위한 몫이 더 큰 것 같다. 내 마음을 몇 줄 적는 여유도 갖기가 어렵다. 그만큼 안을 들여다 보기 힘든 세상이다. 그래도 일기는 꼭 썼으면 좋겠다.

 

일기는 내 마음을 논리적으로 구성하는 과정이다. 일기와 논리는 무관한 듯하지만, 글쓰기의 한 줄 한 줄은 모두 논리적 흐름에 놓여 있다. 일기의 좋은 점은 이 논리를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명료함과 객관화라는 논리의 좋은 점만 남는다. 감정은 매우 자연적인 것이니 그대로 느끼는 게 다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감정 안에도 뼈처럼 논리 구조가 있다.

 

내 감정이 탄생한 맥락을 종이에 적는 순간, 실로 엄청난 일이 벌어진다. 감정을 언어에 가두는 것이다. 덕분에 감정으로부터 상당히 자유로워진다. '아, 내가 화가 났구나.', '그때 정말 실망감이 컸지.'하며 걸음을 뗄 수 있다. 주위를 둘러보게 되고, 해결법이 모습을 드러낸다. 나를 객관화 함으로써 감정의 귀속상태를 해제하는 것이 일기 쓰기다. 나 자신과 관계를 맺는 시간이 만들어진다.

 

일기는 내 마음의 성이다. 최후의 공간이며, 마지막 관계다. 이 저지대가 튼튼한 사람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세상 모두가 날 떠나도 나 자신과 깊게 대화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영역은 언제나 확보되어 있다. 나를 흔드는 감정들로부터 견딜 수 있게 된다. 이 영역은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마음의 공간이 넉넉할수록 품이 넓어져 다른 이들을 잘 보살필 수 있다. 일기의 힘은 아주 세다.

 

반드시 매일 쓸 필요도 없고, 한 장을 꽉 채우지 않아도 된다. 시집만한 노트에 네다섯 줄이면 충분하다. 일기를 써서 내 마음을 온전히 보전하자. 나를 단단하게 지키는 가장 성숙하고 경제적인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