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썸네일형 리스트형 감정기계 감정충격기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지금 이래'를 확실히 전할 수 있는 수단으로 상대가 내 느낌을 고스란히 받게끔 아마 그 시절엔 도통 누구에게도 이해받은 경험이 없어 그런 공상을 했던 게 아닐까 싶다 이제는 말과 글로 나를 표현할 수 있고 변덕스러운 이 마음을 이해해주려 애쓰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 감정충격기는 먼지 쌓인 옛말이 되었다 지금은 감정USB가 있었으면 한다 감정이 증발하지 않게 그 시점에 느꼈던 것 그대로를 저장하는 것이다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고, 끊고 나누는 기능이 있어 천천히 음미할 수도 있다 원본 관리만 잘 한다면 복사, 합성, 전송도 가능하다 아마 지금은 도무지 그때의 감정들이 다시 끓어오르지 않아서 이런 상상을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당시의 통증이 재발하면 꼭 울곤 했는.. 더보기 무제2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야 우물거리지 못할 이 없겠지만 본디 마르지 않는 것이 사랑이라 나는 사랑을 샘에 비유하곤 합니다 사랑이라는 말 너머 그만 익사할 만큼의 황홀이라면 나는 당신을 기억으로 지어 올립니다 처음은 일출과 같고 끝은 석양과 같던 당신을 그림자 저편에 숨어 못내 지켜보았습니다 인간의 5천 년 역사가 당신과의 점심 식사보다 못하여 칸트의 문장 앞에 쿡쿡 웃으며 크림리조또가 차려진 식탁에 앉았습니다 회상의 숲 속 맑은 샘과 같아 가뭄 없는 당신에게서 살아갈 이유를 알았고 삶의 양식을 배웠습니다 날마다 숲을 거닐다 샘에 들러 손으로 그릇을 빚고 흐르는 거울에 나를 띄워 봅니다 당신은 내 사랑의 기준이고 무너지지 않을 집이며 부단히 뜨고 지는 해와 같은 나의 오늘입니다 더보기 잔상 나는 살아갈 적에 내게 닿은 타인의 흔적을 단 한 번도 버리지 않았다 폭식증 환자처럼 관계에 매달렸고 내면은 언제나 불안했다 편지도 그때의 나도 당시의 사람들도 그대로 그 순간에 머물러 있다 환희의 시간을 뒤로 절연한 사람 날이 선 칼날을 주고받고 잘려간 사람 물에 잠기듯 자연스레 잊혀진 사람 꼭 그래야만 했을까 지금의 나라면 괜찮지 않을까 다시 인연으로 이어 붙일 수 있지 않을까 섬뜩한 그리움 차가운 미움 파도 같은 상처를 잠재우고 그때 못 잡았던 손 꽉 끌어안지 못했던 우리 어떻게 안 될까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당신께 미안하다 죄와 잘못, 실수 그리고 우연 그것들의 뿌리된 사람으로 미안하다 시간은 흐르고 기억도 흘러간다 글과 종이만이 고왔던 감정을 품고 언어에 영속 되어 멈춰 서있다 시간의 방에서..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