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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태도

#75 생리현상, 갈등, 인간관계

극단적인 상황 하나를 그려보자. 애지중지 키우던 화분이 돌연 시들해지더니 어느날 아침 누렇게 물들어 쓰러졌다. 이름을 지어주고 SNS 업로드는 물론 놀러온 친구들 마다 소개시켜줬는데, 이렇게 가버린 것이다. 미약하기 그지 없는 생명과 그간 쏟은 정성을 생각하니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그때, 배달앱이 울린다. 점심이 현관에 도착했다. 계속 이렇게 울까?

 

도덕성을 검증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먹고 사는 문제는 언제나 만사 급선무일 수밖에 없음을 말하고 싶다. 아끼는 대상을 잃고 곡을 해도 밥은 먹어야 한다. 챙겨 먹던 약도 욱여넣어야 하고, 틈틈이 화장실도 가야 한다. 생리현상은 그런 것이다. 인성과는 무관한, 산 자라면 마땅히 수행해야 할 엄중한 존재양식이다. 사람관계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배가 아프면 모든 말이 날카롭게 들린다. 아픔이 가실 때까지 입 닫고 조용히 있어줬음 싶다. 말단 부위에 염증이 돋은 채로 모임에 나가면 어디를 자꾸 가자는 지인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다. 먹을 게 좀 들어가야 세상이 환해지는 친구는 대충 반응만할 뿐 제대로 듣고 있지 않다. 이 경우들 모두, 어쩔 수 없다. 다들 엄중한 생리적 요구에 굴복하였을 따름이다.

 

몸이 건강하면 다툴 일이 별로 없다. 잘 먹고 잘 자면 그 다음 재미와 새로움을 찾기 마련이다. 이때 마음도 따라서 말랑해진다. 개방적으로 굴 여유가 생긴다는 말이다. 반면 상대가 자꾸 훈계를 늘어 놓고 정신이 다른 데 팔려있으면 몸이 좋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짜증나지만 관대하게 봐줄 필요도 있다. 컨디션 안 좋은 상태에서 몸을 끌고 여기까지 온 거다.

 

그러니 잠을 못잤으면 약속 시간을 늦추고, 피로로 몸이 무거우면 만날 장소를 근처로 바꾸고, 언제나 카페인과 당분을 가까이하는 편이 좋다. 요지는 우리가 생리현상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생리욕구를 먼저 해결하고, 적절하게 사과한 후에 잘해주면 된다. 인정하지 않고 고집 피우면 몸도 관계도 망가진다.